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훠궈에서 빠지지 않던 죽순을 다시 보게 된 이유

어릴 적 시골밥상 한편에서 마주하던 투박한 나물 중에서 유독 손이 자주 가던 음식이 있었습니다. 입안에 넣고 씹을 때마다 경쾌하게 울리는 아삭한 소리가 참 좋아 젓가락을 놓지 못하게 만들던 식재료, 바로 죽순이었습니다.

이 죽순에 대한 애정은 성인이 되어서도 고스란히 이어졌습니다. 특히 젊은 시절 중국에서 오랫동안 생활하던 때가 있었는데, 그 시절 찬 바람이 불거나 기운이 돋을 때면 삼삼오오 모여 중국식 샤브샤브인 '훠궈(火锅)'를 즐겨 먹곤 했습니다. 그때마다 제 식탁 위에 빠지지 않고 등장했던 단골손님이 바로 죽순이었습니다. 펄펄 끓는 육수에 살짝 담갔다 꺼낸 죽순의 그 독보적인 아삭함이 얼마나 좋았던지, 동행한 이들이 만류할 정도로 늘 두 번씩 추가 주문을 해가며 냄비를 채우곤 했습니다.

그저 식감이 좋고 몸에 막연히 좋을 것이라 여기며 즐겼던 이 소박한 식재료가, 오십 줄에 접어들어 몸 이곳저곳을 살피다 보니 대지가 선물한 참으로 귀한 보약이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자연림의 습하고 비옥한 흙에서 막 돋아난, 생명력 넘치는 신선한 죽순 여러 개가 아침 이슬을 머금고 있는 모습을 클로즈업한 사진입니다.

 

뇌를 깨우는 하얀 가루와 몸속을 비우는 초록 빗자루

죽순을 직접 사다가 삶아보신 분들은 마디마디 사이에 맺히는 하얀 가루를 보고 깜짝 놀라 씻어내 버리곤 합니다. 혹시 농약이나 이물질이 아닐까 걱정하시는 마음에 서둘러 물로 헹궈내시지만, 사실 이것은 죽순의 가장 핵심적인 영양소인 '티로신(Tyrosine)'이라는 귀한 성분입니다.

티로신은 우리 뇌에서 의욕을 만들어내고 기분을 맑게 해주는 도파민과 노르아드레날린의 재료가 되는 아주 고마운 아미노산입니다. 비유하자면 지치고 둔해진 우리 뇌 신경망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천연 활력 스위치'와 같습니다. 나이가 들면서 문득 머리가 무겁고 무기력해질 때, 이 하얀 가루를 품은 죽순은 뇌세포를 직접 보듬어 지친 신경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 줍니다.

여기에 더해 죽순은 물에 녹지 않는 '불용성 식이섬유'를 가득 품고 있습니다. 이 섬유질은 우리 장 속을 구석구석 굴러다니며 몸속에 쌓인 미세먼지나 중금속 같은 유해 물질을 자석처럼 흡착하여 몸 밖으로 시원하게 쓸어내 주는 빗자루 역할을 도맡아 합니다

껍질을 벗기고 깨끗하게 손질하여 삶은 후, 조리를 위해 어슷썰기 한 하얗고 부드러운 속살의 죽순이 나무 도마 위에 정갈하게 놓여 있는 모습입니다.

 

아린 맛을 부드럽게 길들이는 쌀뜨물의 미학

아무리 생명력이 넘치는 죽순이라도 날것으로 먹으면 입안 가득 아린 맛이 감돌고 몸속에서 결석을 유발할 수 있는 '옥살산'이라는 독성이 들어있습니다. 이 강한 기운을 부드럽게 잠재워 우리 몸에 이롭게 다스리는 옛 선조들의 지혜가 바로 '쌀뜨물'입니다.

죽순을 삶을 때 맹물 대신 쌀뜨물을 가득 채워 끓여보세요. 쌀뜨물 속의 미세한 전분 입자가 죽순 표면의 아린 맛을 자석처럼 끌어당겨 말끔히 씻어내 줍니다. 또한 죽순이 공기와 만나 누렇게 변하는 산화 과정을 막아주어, 삶아낸 후에도 뽀얗고 고운 속살을 그대로 유지하게 돕습니다. 이때 칼칼한 고추를 한두 개 툭 던져 넣어 함께 삶으면 비린 맛은 잡아주고 죽순 특유의 맑은 풍미가 한결 살아납니다.

잘 삶아진 죽순을 식탁에 올리실 때는 기름진 육고기를 곁들이시는 것이 좋습니다. 죽순의 풍부한 섬유질이 고기 속 콜레스테롤이 우리 몸에 무분별하게 흡수되는 것을 든든하게 막아주기 때문입니다. 소고기나 돼지고기와 함께 가볍게 볶아내면, 영양학적으로나 식감으로나 이보다 더 훌륭한 조화가 없습니다.

시장 모퉁이에서 제철 죽순을 영리하게 고르는 안목

초여름의 재래시장에 나가보면 저마다 다른 생김새의 죽순들이 소박하게 누워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4월 말 가장 먼저 얼굴을 비추는 맹종죽은 크기가 우람하고 살이 두꺼워 조림이나 튀김 요리에 묵직한 맛을 더하기 좋습니다.

제가 가장 애정 하는 종류는 5월 중순 즈음 나오는 분죽(솜대)입니다. 마디마디가 촘촘하고 묵직한 분죽은 아삭하면서도 쫄깃한 식감이 단연 으뜸이라, 가볍게 삶아서 초고추장에 콕 찍어 먹는 숙회로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하지요.

만약 직접 삶는 과정이 조금 번거로우시더라도 통조림 속 죽순보다는 시장 골목에서 흙냄새를 풍기는 생죽순을 한 번쯤 고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가공 과정을 거치며 소중한 수용성 비타민과 티로신 성분이 씻겨 나간 통조림과는 비교할 수 없는 깊은 향과 생명력이 깃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성질을 따뜻하게 보듬는 조율의 미학

"몸에 그렇게 좋다니 오늘 당장 한 솥 가득 삶아 매끼 올려야겠다" 하는 조급함은 잠시 내려놓으시는 것이 좋습니다.

자연 속에서 대지의 음기를 가득 머금고 자라난 죽순은 본래 그 성질이 매우 차가운 식재료입니다. 평소 아랫배가 차서 소화력이 약하거나, 찬 음식을 먹으면 이내 설사를 자주 하시는 분들이 과하게 섭취하시면 오히려 속이 부대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죽순을 조리하실 때 성질이 따뜻한 생강을 가볍게 채 썰어 넣거나, 마늘과 고기를 넉넉히 더해 성질의 균형을 맞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대지의 에너지가 가득 찬 식재료일수록, 우리 몸의 균형에 맞춰 겸손하게 조율하며 먹는 것이 자연과 소통하는 가장 영리한 방법입니다.

맺으며 : 영양제 통을 늘리기 전에 식탁의 아삭함을 찾아서

매일 아침 식탁 머리에 놓인 수많은 알약 통을 보며 한숨을 쉬곤 합니다. 화학적으로 정제된 영양제 몇 알로 오늘 하루의 건강을 숙제하듯 치러내는 우리들의 모습이 안타까워서일 것입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진짜 건강은 공장의 기계에서 찍어낸 알약 속에 있지 않습니다. 흙의 맑은 기운을 온전히 빨아들이며 대지를 뚫고 올라온 죽순의 단단하고 아삭한 살코기 한 점에 깃들어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값비싼 비타민 통을 장바구니에 담기 전에, 시장 모퉁이에서 싱싱한 생죽순 몇 개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보시는 건 어떨까요. 뽀얗게 끓어오르는 쌀뜨물 김을 바라보며 가족과 둘러앉아 나누는 아삭한 죽순 한 입이, 메말라가던 우리 몸과 마음에 건네는 가장 따뜻하고 정직한 위로가 되어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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